안녕하세요. 마키나락스(MakinaRocks) 사업총괄 허영신입니다. 하노버메세(Hannover Messe)는 산업기술, 스마트팩토리, 제조 분야의 신기술 등에 관심있는 분들에게는 CES와 같은 것인데요. 그동안 ‘하노버메세에서 이런 것들이 소개되었다’를 기사와 풍문으로만 듣다가 올해 드디어 저도 직접 참관을 하게 되었습니다.

Opening Ceremony에서부터 마지막 떠나는 순간까지 엄청난 양의 메시지와 정보들이 쏟아지다 보니, 정작 참관 기간 중에는 이를 머리 속에 밀어 넣기 바빴는데요. 돌아와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어 곱씹어 보니, 3가지 시사점으로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제조 x AI 스타트업인 마키나락스의 사업 담당자 관점에서 느낀 점이라 다소 제한적일 수도 있으나, 조심스레 이야기 드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Industry 4.0 패러다임의 진화

많은 분들이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법한 Industry 4.0이란 키워드는 2011년 하노버메세에서 등장했다고 합니다. 등장 초기 부터 이 키워드는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반향이 너무 커서 저는 오히려 ‘German Engineering으로 포장되면 흔한 볼펜 하나도 내구성이 강하고 품질이 좋은 볼펜으로 느껴지는 그 마법을 독일이 이제 생산기술에까지 써먹으려 하는구나’라며 반감을 품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약 10년이 지난 지금 Industry 4.0은 산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마법의 키워드는 제조 기술과 IT기술의 결합을 촉진했고, 제조 기업 내 경영자들의 혁신 의지를 불살랐으며, 결과적으로 이제는 더 할 것이 없을 것만 같던 제조 현장의 혁신을 드라이브 했습니다. 마치 방향성을 잃고 대양을 표류하던 선박들에 북극성이 나타난 것처럼 Industry 4.0은 제조 기업들을 견인했습니다. 그러나 그 10년동안 이 키워드는 그만큼 많이 소비되었고, 평범해져서, 첫 등장만큼의 반짝 반짝함은 사라진 것 또한 사실입니다.

2022년 하노버메세는 이 개념의 확장을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전과 현격히 다른 산업 대전환(Industrial Transformation)을 달성하자!’가 Industry4.0이 내포한 메시지였다면, 이번에 제시된 Digitalization과 Sustainability는 마치 ‘무엇을 위한 산업대전환(Industrial Transformation)을 달성해야 하는가?’’를 선포하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Sustainability는 단연 하노버메세 전반의 가장 핫한 키워드였습니다.

과거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소 관련 기술들이 전시되었고, 독일 총리는 신재생 중심의 에너지 구조 변환을 선포했습니다. 다소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이 정도까지 이 키워드를 밀어부치는구나’ 느꼈던 부분은 Opening Ceremony 중 어떤 기업이 새로 개발한 High Precision Actuator를 올해의 출품작으로 선정하며, 높은 정밀도로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여 Sustainability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했다고 언급한 것이었습니다. 에너지 등과 같이 직접적으로 관련된 분야는 물론, 전통적인 산업 기술의 발전 방향에 Sustainability라는 이정표를 세우고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제의 수상작: Sumitomo Drive Technologies의 High Precision Actuator (출처 : 하노버메세)

2022년 하노버메세가 산업계에 던진 Sustainability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폭발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키워드가 과거 Industry 4.0처럼 산업계의 혁신을 드라이브하는 마법의 키워드가 된다면, 단순하게 OEE(Overall Equipment Effectiveness, 설비종합효율)를 높이기 위한 것으로 포장된 기술, 솔루션과 Application은 ‘유행에 뒤처져 팔리지 않는 옷’처럼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업기술 경쟁 구도, Clash of Clans

패러다임의 변화는 분명 흥미롭긴 했으나 시간을 두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해야 할 것으로 당장 저희에게 영향을 주는 성격의 시사점은 아니었습니다. 그에 반해 두번째와 세번째는 좀 더 즉각적인 고민을 불러왔습니다

윤성호 님(마키나락스 CEO & Co-founder)은 2019년 하노버메세를 참석하고 난 후 “형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소회를 팀원들과 공유한 바 있습니다. 역대 가장 큰 규모로 꼽히는 2019년 행사에서는 AWS, 구글, Microsoft과 같은 Tech Giant가 각각 AI, 클라우드와 같은 기술로 무장한 채 최대 규모의 전시관들을 차리고 등장했습니다. 이 모습은 과거 TV와 세탁기 등이 전시되던 CES에 구글이 자율주행차를 가지고 등장한 이후 온갖 신기술들의 전시장이 된 것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치 Industrial Transformation의 주도권을 놓고 IT기술 기업이 자동화 설비 제조사와 같은 이 분야 전통적인 회사에게 선전 포고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코로나로 2년을 보내고 열린 2022년 하노버메세의 느낌은 이 관점에서 ‘형 아직 죽지 않았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2022년의 형은 2019년의 그 형이 아닙니다. 코로나 직후에 개최되어 2019년만큼 큰 규모로 열리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올해 하노버메세는 Siemens, Festo, Bosch와 같은 독일 전통적인 산업기술 기업들이 단연 돋보였습니다.

축구장 만한 지멘스 전시관

Siemens는 압도적으로 큰 전시관으로 모든 참관객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이 기업들에게 지난 2년은 부족한 Digital 역량을 보강하는 절차탁마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Digital Twin은 실물과 동일한 가상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실물에서 진행되는 것들을 Simulation하기 위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정도까지 발전되려면, Digital 기술 뿐 아니라, 대상이 되는 설비 등 실물 환경의 Physics, Domain 특성 등을 알아야 합니다. Siemens 전시관의 주제는 Simulation이 가능한, 실물에 발을 딛고 서 있는, Digital Twin이었습니다. 오랜기간 축적한 도메인 지식과 설비 Engineering 역량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Digital 기술을 무장할 때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Digital World와 Physical World가 연결된 지멘스의 Factory Twin

거인들의 휘황찬란한 전시관을 한 발 물러나 바라볼 때는, 누가 이길지 궁금해하며 격투 경기의 시작을 흥미진진하게 기다리는 관람객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시관으로 직접 들어간 순간 ‘이 싸움은 이미 남의 싸움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앞선 하노버메세에서는 가령 Siemens가 Mindsphere, 구글이 GCP 등 각 사가 자사의 주요 제품과 기능을 소개하는 데 집중했다면, 2022년 하노버메세는 Giant들이 자체 제품과 기술은 좀 숨기되 이를 활용하여 직접 구현한 다양한 Use Case, 현장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우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솔루션들은 대부분 스타트업, 컨설팅사와 같은 다양한 Partner사와의 협업 결과물이었습니다. 자체 ML역량을 바탕으로 AWS 컴포넌트를 활용하여 설비 이상탐지를 구현한 AWS 전시관 내 부스는 문전 성시를 이룬 반면 유사한 솔루션을 가지고 단독으로 참여한 스타트업들의 전시관은 한산한 것을 보며,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는 누구의 어깨에 올라타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솔루션들의 공통점, 쉽게! 쉽게! 쉽게!

첫 날의 일정은 평소에 관심있던 산업용 로봇 관련 발표를 듣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여러 사례 중 작업자가 로봇을 손으로 잡고 직접 움직여서 로봇의 동작을 티칭하는 사례가 눈에 띄었습니다. 생산 현장에 로봇이 많이 활용되면서 이에 비례하여 로봇 티칭을 변경해야 하는 상황은 더 많이 발생하는데, 이는 로봇 전문가가 아닌 Field Engineer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Task입니다. 부적절한 티칭은 작업 불량을 유발하고, 부하 증가로 로봇의 고장 위험을 높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를 매번 전문가를 불러 해결하고자 하면 꽤 많은 비용이 지출되기도 합니다. 발표자는 소개한 새로운 티칭 방식 이면에, Field Engineer는 모르게, 돌아가는 여러 기술들을 소개하며 ‘기술의 역할이 뭘까요? 어려운 것을 쉽게 해주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후 4일간 여러 부스와 발표장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반복적으로 들렸습니다. Festo 전시관에서 가장 제 이목을 끌었던 것은 Battery pack handling이었습니다. 실제 라인을 직접 제작하고 Engineering할 수 있는 기존 역량에 Digital 기술을 더하여 이를 Digital Twin으로 구성하고, AI로 Quality, Maintenance, Energy 관련 Health Score를 제공한다고 소개하더군요. 설비의 데이터를 활용하여 ML/DL 모델을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동일한 설비라 하더라도 현장 특성, 생산하는 Recipe에 따라 데이터 분포가 제각각 이어서, 성능 좋은 모델을 만드는 방법을 표준화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고민하는 저희로서는 어떻게 이 부분을 해결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제로 제공되는 I/F는 몇 가지 세팅으로 Festo가 정한 몇가지 방식에 따라 데이터 분포와 모델의 해석 결과를 보는 식으로 매우 간단했습니다. 모든 것을 고려하는 복잡한 AI모델을 구현하기 보다는 ‘우리는 이 라인의 Field Engineer가 꼭 봐야할 몇 가지 Parameter를 알고 있고 이것만 쉽게 제공하는 것이 더 유의미하다’는 설명이었죠. 반대 방식으로 산업용 AI 솔루션을 제공하는 저희 입장에서 의구심이 들긴 했지만, 설비를 포함한 Domain 특성을 잘 아는 Festo같은 회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접근 방식이란 점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노버메세 2022 페스토 부스

AI는 이번 하노버메세에서도 주요한 Category였는데, 실제로 큰 전시관을 차린 회사들 중에 AI 혹은 관련한 기술 역량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회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Field Engineer를 Target으로 한 No Code 혹은 Low Code 기반 솔루션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스타트업들 중 일부가 AutoML과 같이 AI관련 키워드를 홍보했는데, 이들 역시도 ML/DL관점에서 기술적으로 온전한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측면 보다는, Field Engineer와 같은 현장 인력들이 Domain Knowledge와 더불어 데이터를 함께 고려할 수 있도록 쉽게 모델을 만들고 활용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Qeexo라는 미국 스타트업은 AutoML관련 기술적 노하우를 보유한 회사인데, 자체 개발한 간단한 센서와 태블릿에서 활용 가능한 간단한 UX로 ML/DL을 모르는 Field Engineer가 모델을 만들고, 결과를 비교해보고, 모델 학습을 위한 Labeling을 직접하여 모델을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솔루션을 소개했습니다. 반도체 설비 등 복잡한 설비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나, 펌프나 간단한 회전기계류에 손쉽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Field Engineer를 공략하여 이미 미국 내에서 수십 여개의 Paying Customer를 확보하고 있어, 설명을 듣는 내내 부럽고 놀라웠습니다.    

Qeexo 부스에서 만난 이상원 대표

기술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다양할 수 있으나, 그 문제가 뭐든, 연구 활동이 아닌 이상에는, 사용자가 쉽게 활용할 수 있어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직접 방문하기 전에 예상한 하노버메세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큰 전시회 정도 였습니다. 국내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들과 비슷하나, 전시장 더 크고 그래서 전시관 더 많은 그런… 그런데 직접 경험해보니 단순한 전시회를 넘어, 제조/산업계의 발전 방향에 대한 Agenda Shaping을 하는 일종의 잘 만들어진 플랫폼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메가트렌드라는 것이 이렇게 쉽게 형성되진 않겠으나, 2022년 하노버메세가 던진 메시지들이 시장 상황들과 상호 작용하며 어떻게 성장하여, 제조/산업에 어떤 임팩트를 만들지 지켜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